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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한 이해(2) - 이슬람의 발달사와 현재
이정엽 조회수:998
2016-02-24 00:00:00

 

2장. 이슬람의 발달사와 현재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 짧게나마 핵심적인 사건들 위주로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그들의 역사이면서 종교의 발달과정이기에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 기초 배경: 이스마엘 자손들의 활동반경


 

먼저 이스마엘의 자손들인 중동의 이슬람을 이해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것은 그들이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중개무역상을 이루며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11을 보면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들의 보물함을 열어 선물을 드리고 있다. 그 내용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다. 이중 유향(frankincense)과 몰약(myrrh)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유향과 몰약 모두 각기 특정 나무에 상처를 내어 나온 수지를 굳혀 사용하는 향료로써 지금도 둘 다 아라비아 반도와 북 아프리카 내에서 생산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중개무역상이었던 중동의 이스마엘 자손들의 중요 거래물품이었다. 인도 북부 산악지대부터 시작하여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시작점까지 이어지는 지역에서 이들은 광야를 지나는 카라반을 이루며 무역을 했었다. 이 지역들은 역사적으로 이스마엘 자손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진 지역들이었다.


 


 

2. 이슬람의 시작: 무함마드


 

‘무함마드’(마호메트 혹은 모하메드, Mohammed, Muhammad, Mahomet)는 아라비아 반도 중부 홍해 연안의 도시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이 지역은 흩어진 유대인들과 로마교회의 핍박을 피해서 정착하게 된 에비온파(Ebionism: 기독교 신비주의)가 있었으나 전통적인 다신교 사상이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명문이었지만 세력이 약했던 가문적인 배경과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법적 권리나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였으나 ‘아부 탈리브’ 삼촌의 보호 하에서 어린 나이부터 삼촌을 따라 시리아 지방으로 무역 대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던 그가 25세일 때 부유한 미망인이자 그의 고용주였던 ‘하디자’(40)와 결혼한다. 무함마드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으나 계속된 아들들의 죽음으로 인해 힘든 과정을 거쳤다. 경제적인 부는 그에게 여유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금식과 사색으로 진리를 구했다. 그러던 중 히라산 동굴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 예언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첫 계시를 받은 후 점차 무함마드의 양자들과 노예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였고 3년째 되던 해 무함마드는 자신의 친구와 친족을 모아놓고 단일신 알라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게 된다. 그 이후 12년이 지나도록 대부분이 마호메트 자신처럼 쿠라이시 부족에 속해 있으나 세력이 약한 가문들의 사람들이 모였으나 그 수가 70명이 넘지 못했었다.


 

다신교적인 그 당시 종교 분위기와는 달리 단일신에 대한 믿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핍박으로 메디나로 피신(이주라는 이름의 이 해가 이슬람역의 원년)하였다가 메카로 다시 돌아와 정복함으로 이슬람의 종교적 조직이 정립되기 시작되었다. 이 과정들 속에서 자신의 아내의 죽음이후 무슬림 공동체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친구인 ‘아부 바크르’의 딸이였던 ‘아이샤’와 결혼하였다. 이 때 무함마드의 나이가 50이고 아이샤의 나이가 9세였다. 이것은 지금도 이슬람 세계에서 조혼이 관대한 이유가 되었다. 메디나로의 피신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서 정치, 종교적 지도자로서 그리고 군사지도자로서 입지를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 무함마드 사후: 정복전쟁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은 신도의 장로 중에서 교통(敎統)의 후계자인 네 명의 ‘전통 칼리파(칼리프, Caliph)’를 선출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여러 곳에 기지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국경은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남쪽으로는 북 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중동과 아르메니아를 정복하였다. 아랍의 정복활동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점령지역이 사산 제국처럼 오랫동안 나라 밖 문제들로 쇠약해진 상태였거나 스페인처럼 국내 기반이 취약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전체정치와 무리한 세금부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이 깊어진 상태였다.


 

 


 


 


 

4. 투르크의 이슬람화

당나라에 밀려 서쪽으로 전진하여 천산산맥 남북로에 자리를 잡은 투르크(돌궐)족과 볼가강 중류의 불가르족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전까지 아랍족에 이어 이란인 중심의 이슬람 세계는 이 무렵부터 투르크의 패권 밑으로 옮겨지는 경향이 생겼다. 10세기 말부터는 투르크계 가즈나 왕조가 인도를 자주 침범하며 북인도 지방을 이슬람화하는 확고한 기반을 놓았다. 투르크족은 셀주크 제국에 이어 오스만 제국으로 들어서면서 발칸 반도로 진출하며 비잔틴제국을 멸망시켰다. 또한 인도에 세력을 부식한 이슬람은 이곳을 기지로 하여 동남아시아 섬들을 따라 이슬람교를 전했고 지금의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면의 여러 나라들에 이슬람을 전했다.


 


 

5. 시아파(Shi'a)와 수니파(Sunni)


 

이슬람교 안에는 두 개의 주요 전통인 시아파와 수니파가 있다. 수니파는 1대부터 3대까지의 칼리프의 대를 잇는 무리라면, 시아파는 3대 칼리파의 암살 이후 자리에 오른 4대 칼리프를 잇는 무리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좀 더 설명하자면, 시아파(‘알리의 무리’)의 기원은 ‘알리 이븐 아비탈리브’의 추종집단이며 이들은 마호메트가 알리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예언자의 혈통을 지녔으며(마호메트의 사촌), 마호메트의 딸인 파티마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가 바로 마호메트의 직속 후계자라고 주장했다.


 

누가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 것인가, 그리고 그 지도력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놓고 이슬람 사회는 분열되기 시작했다. 시아파는 알리라는 인물과 그의 후손인 이맘(교주)들이 교리상으로 강조하는(알리는 오주의 첫째 의무인 샤하다에 포함된다) 동시에 종교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시한다(이맘의 탄생과 죽음을 기념하는 특별한 축제가 열리고, 그들과 관련된 성소에서는 순례자들이 모인다). 시아파는 또한 종말론, 순교와 관련된 역사관, 그리고 가족법의 몇 가지 측면에서 주류 이슬람교와 구별된다.


 

수니파(‘수나[관습]의 추종자’)라는 이름의 정통 이슬람교는 칼리프로 대표되는 정치적 권위와 종교학자들(울리마)로 대표되는 영적 권위를 구별한다. 그러나 시아파는 예언자에게 구현되어 있던 영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가 맨 처음 알리에게 전해졌고 그를 통해 다시 그의 부인 파티마와 이맘들에게 전해졌다고 믿는다.


 

시아파

수니파

4대 칼리프(알리)만 인정

4대 칼리프를 모두 인정

이슬람 정통성은 마호메트 자손에 국한

정통성을 포괄적으로 허용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이란, 이라크, 중앙아시아 국가들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앙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는 시아파이고 반군은 수니파이다. 또한 예멘 정부는 수니파, 반군은 시아파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수니파가 다수이고 소수민족은 시아파이다. 이들 사이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6. 수피즘(Sufism)의 발생과 발전


 

수피즘은 이슬람교의 내적, 영적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피’는 ‘양모’를 의미하는 아랍어 ‘수프’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슬람 수도사들이 거친 모직으로 짠 옷을 입었다는 뜻이다. 신학적으로 수피즘은 자비를 베푸는 신과 영적 고양을 믿는 신도 간의 개인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신도들은 개인적이고 또는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디크르라는 의식을 통해 끊임없이 신의 이름을 암송하거나 명상과 춤을 통해 신앙심을 표현한다. 이것은 만트라적인 신비주의적 종교체험을 행하는 것이다.


 

수피즘의 역사적 계기는 북인도에 이슬람 국가들이 세워짐에 따라 힌두교의 영향을 받으면서이다. 10세기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수피즘은 인도의 힌두교적인 요소들(만트라, 금욕, 명상과 같은 신비주의 적인 요소들, 성인숭상)이 섞이면서 그 특징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정통 이슬람교도들로 부터는 비이슬람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1925년 터키는 아타튀르크가 수피즘을 법으로 금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서구의 제국주의나 소련의 공상주의 영향을 받은 아프가니스탄과 코카서스 산맥, 과거 러시아의 투르키스탄 같은 지역에서는 도덕적 정체성과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수피교단이 중요역할을 했다.


 


 

7. 남부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우리가 보통은 이슬람을 생각하면 중동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이슬람의 가장 많은 신도들이 남부와 동남부 아시아에 모여살고 있다. 이곳의 이슬람교도 약 5억 5천만명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이곳에 모여살고 있다. 언어와 인종이 다양하지만 이곳의 대부분은 수니파이다.


 

이곳에 이슬람교가 들어오게 된 계기는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이슬람교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아랍 무역상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남부를 통해 들어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 북쪽의 중앙아시아로부터 육로를 통해 벌인 정복활동을 통한 이슬람 군대를 통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수의 외국인 노동자가 이곳에서 왔기에 우리는 이들이 이슬람교도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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