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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이유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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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2 09:37:44

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이유


 


I. 많은 성경들


 


우리 믿음과 행위의 기초


우리의 믿음과 행위의 기초는 무엇인가? 교회의 전통인가? 설교인가? 기독교 서적인가? 성경공부 교재인가? 성경 말씀 자체인가? 아니면 성경 말씀으로 가공된 어떤 것인가?


 


예견된 공격


(시 11:3)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로운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대적이 기초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성경이슈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유: 줄거리 신앙 vs 성경 신앙


     긍정적 이유: 지식 위주의 신앙을 거부한다. 형식보단 본질(사랑)에 충실하고자 한다


     부정적 이유: 줄거리만 맞으면 된다(줄거리 신앙 = 줄거리 위주, 메시지 위주, 교훈 위주). 성경이슈에 빠지게 되면 기득권을 잃게 된다.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다.


 


우리 선조들과 우리가 처한 상황은 좀 다르다.


과거에는 성경 자체를 구하기 어려웠다. 과거에는 여러 종류의 성경으로 혼란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20세기 이후)는 많은 성경이 등장했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은 겪지 않았던 싸움을 싸워야 하는 처지에 있게 되었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성경 홍수의 시대


한글: 개역성경, 개역개정판, 표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외


영어: KJV, NKJV, NIV, NASV, TEV외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성경 선택의 기준)


  •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쓰는 걸로

  • 유명한 신학 박사와 목사들이 혹은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걸로

  • 읽기 쉬운 것으로

  •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증거가 분명한 것으로

 


이렇게 많은 성경이 있는 이유


  • 기존 성경의 언어나 표현이 구식이라 현대인들에게 맞는 쉬운 성경을 내느라

  • 기존 성경의 틀린 부분과 문제점을 바로 잡아 내느라

  • 독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 돈벌이가 되니까 // 대적의 활동


 

II. 성경 보존에 관하여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 -> 믿음을 통해(엡 2:8,9) -> 믿음은 어디서 나는가? -> 하나님의 말씀에서(롬 10:17) ->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 성경 기록들(딤전 3:15)에 -> 지금 그 하나님의 말씀(성경 기록들)이 우리에게 있는가?


  1. 한 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 기독교인으로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1. 불완전하게 남아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록의 보존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시거나 성경 기록을 보존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가?

  1. 완전하게 남아있다. ->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하나님의 마음 속에? 성경 기록 속에? 성경 기록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있다면 어느 성경인가? 원문 성경인가?

 


성경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성경 기록들)을 보존하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1. 약속 - 시 12:6~7; 시 78:1~8; 시 105:8; 시 119:89,111,152,160; 잠 22:20~21(기록하는 이유 – 말씀들의 확실함 알림); 전 3:14; 마 4:4(기록된 말씀으로 산다); 마 5:17~18; 마 24:35(신약도 없어지지 않음); 요 10:35(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 골 1:17(consist); 벧전 1:23~25(영원히 지속되는 말씀);


 


마태복음 24:35에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무엇이 하늘과 땅만큼 굳건할 수 있겠는가? 지진이 일어나도 땅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그 하늘과 땅이 없어질 것이라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과 불신자들을 보라. 그들은 땅을 당연히 있는 것으로 여긴다(우리 모두도 그렇다). 현재 그 위를 걷고 있으며 걸을 때 땅이 무너지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땅은 견고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하늘에 영원히 정착되었다. 그들은 보존된 말씀들이다. 그러므로 없어질 하늘과 땅보다 더 보존되고 더 정착해 있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2. 약속의 성취 - 왕상 8:24(솔로몬); 롬 4:20-21(아브라함); 딛 1:2(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히 10:23(신실하신 하나님)


 


성경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말씀 -> 기록 -> 보존(원문 필사 및 번역)


 


원본은 의미 없다: 성경보존은 원본의 보존이 아님(렘 36:27,28). 원본도 결국 베껴쓰기


 


성경은 보관용 책이 아니다: 박물관에 있는 책이 아닌 성도들이 사용함으로써 낡아짐


 


번역이 필요하다: 바벨탑 사건 이후 다양한 언어가 생김.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오면서 필사의 형식에서 번역의 형식으로 보존의 방식이 바뀜. 모든 사람에게 성경이 읽힐 수 있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함.


 


III. 왜 킹 제임스 성경인가?(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요약)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이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원문)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번역자)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기법-기술,신학-재료) 주의할지니라. 이는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전 3:9~11)


 


  1. 원문이 뛰어나다

킹 제임스 성경과 현대 번역본들은 번역의 기초가 다르다.


A. 구약


전통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 – 벤카임 마소라 본문(다니엘 봄베르그판, 제2랍비성경)


VS 키텔의 히브리어 성경


 


“대부분의 히브리어과(히브리어를 가르치는 단과대학, 종합대학, 신학교)에서 벤 카임 히브리어 본문 대신 벤 아세르 히브리어 본문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신약에서 전통 그리스어 본문 대신 비평 그리스어 본문을 쓰는 이유와 같다. 즉, 히브리어든 그리스어든 "가장 오래된" 본문이 항상 최고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B"(바티칸 본문)와 "Aleph"(시내산 본문)과 같이 소위 "오래된" 신약 본문들과 그와 관련된 43개의 문서들은, 내가 믿기로는, 신약 성경이 기록된 이후 100년 사이에 있던 이단들에 의해 오염된 것들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가장 오래(old)되었을지라도 이단들의 손을 거쳤으므로 최고(best)는 아닌 것이다. 반대로 비록 훗날 기록된 본문이라도 원문에 충실하다면 그것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은 이렇게 원문에 충실한 본문들을 따르고 있다.”


 


* 구약의 권위를 인정하신 예수님 - 마 4:4; 마 5:17-18(율법, 대언자); 눅 24:27(모세,대언자); 눅 24:44(율법,대언자,시)


 


“다른 선택은 없는가? 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의 모체가 되는 다니엘 봄베르그판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을 받아들지 않는다면 어떤가 하는 말이다. 다른 선택은 말 그대로 다른 기초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다른 것을 기초로 받아들이겠는가? 한 때(1906, 1912) 킹 제임스 성경과 같은 본문적 기초를 가지고 있었지만 1937년에 다른 히브리어 본문으로 개정되어 폐물이 되어 버린 키텔의 Biblia Hebraica(BHK)를 쓰려는가? 아니면 키텔성경을 기반으로 개정된 1967/77년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BHS)를 쓰려는가? BHKBHS 중에서도 페이지 상단에 있는 불완전한 히브리어 본문을 기초로 사용하려는가 아니면 그 아래 2만에서 3만 군데에 달하는 변경내용을 담은 각주를 기초로 삼으려는가? 각주를 쓰겠다면 어느 각주를 말하는가? NKJV가 사용했던 부분인가? NASV가 사용했던 부분인가? 아니면 NIV가 사용했던 부분인가? 전부 다 가져다 쓰려는가? 아니면 25%? 아니면 50%? 아니면 아예 무엇이 구약성경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드러누울 것인가? 결국 “히브리어 구약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어. 그러니 모두가 미심쩍을 수 밖에 없지”라는 입장을 취하려는가? 이 모든 혼란의 장본인은 사탄이다. 사탄은 이런 거짓 의혹의 우두머리이다. 기준을 놓치게 되면 의심이 바다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다. 수년 동안 교회에 출석했지만 정작 주님을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올바른 히브리어 구약 본문에 대해서는 신학자들과 목사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고 언쟁이 끊이지 않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난 포기했다”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런 혼란과 의심을 씨앗을 심을 수만 있다면 그는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한 오랜 연구와 심사숙고와 기도 끝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전통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에 관한 한 한 치도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B. 신약


수용(공인) 본문 – 베자 5판 성경 VS 네슬/알랑(웨스트코트와 호르트) 본문(5,000군데 이상의 차이)


 


(1)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수용 본문은 교회(the churches)가 받아들인 본문


 


(2)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수용 본문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다.


 


<교리와는 상관없다는 주장에 대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에 좀 빠진 것이 있긴 하지만 주된 교리는 그것과 연관이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주된 교리가 연관되어 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 구절에서 교리 하나를 빼 먹었다 해도 신약 다른 곳에서 그 교리를 다시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글쎄, 100가지 다른 구절에서 그 교리를 남아 있다고 한들 빠진 곳에 있는데 어떻게 온전하다고 하겠는가? 불완전하고 결함 있는 그리스어 본문과 그 기초 위에 결함투성이의 영어 번역본이 있을 뿐이다.


 


<초기 이단들이 오염시킨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


이단들이 왜 성경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손을 대었는지 아는가? 이단들은 성경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된 후 초기 100년 동안의 번성했던 이단들은 신약의 모든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신약 전체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빼고 바꾸고 짜맞출 수 없었다. 그저 자기들이 갖고 있는 책에 한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단의 난도질을 피한 책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라도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온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100%가 아니라면 몇 개 정도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한 개 정도? 그 정도면 적어도 내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5,600군데 이상, 10,000개가 넘는 단어라면 문제는 심각해 지는 것이다.


 


<수용 본문의 현실>


사실 변개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1년까지 수용 본문이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사용되어왔다. 즉 거의 1800여년 동안 교회는 수용 본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저버렸다. 18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어떤 것이 갑자기 오늘 좋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지지했던 이 수용 본문을 믿는다고 하면 무시당하거나 못 배운 사람으로 인식된다. 네슬/알랑 본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잘못된 사람이란 인식이 있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수용 본문의 교회사적 증거>


그리스정교, 현대 그리스교회까지


 


<수용 본문의 사본학적 증거>


현재 우리 손에 있는 5,225개 신약 사본들의 99% 이상이 웨스트코트-호르트 본문이나 네슬/알랑 본문이 아닌 수용 본문과 일치한다. 5,255개의 문서 중 겨우 45개의 문서, 전체의 1%도 안 되는 증거만이 그들의 본문과 일치한다.


 


사본과 Aleph사본의 진실>


웨스트코트 호르트의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는 두 가지 비중 있는 사본이 있는데 바로 B 와 Aleph 사본이다. B는 바티칸 사본이고 Aleph은 시내 사본이다. 이 두 사본이 4세기 엉셜 사본이라는 추측이 있는데 당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본의 소유자는 그것이 이단들의 손에 훼손되고 더럽혀진 타락한 본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웨스트코트 호르트가 그 추종자들이 B와 Aleph사본을 최고라고 치켜 세운다. 이 두 사본이 가장 오래되었고 그 결과 가장 순수하다고 논리에서이다. 하지만 이 둘은 최고도 아니고 순수하지도 않다. 이단들이 오염시킨 본문이다. 그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두 사본에 보관에 적합한 기후를 가진 이집트에 있었고 둘째 이단들이 변개한 사실을 안 교회가 두 사본을 아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가 핍박 당하고 책들이 불태워질 때 장롱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두 사본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본은 사용되었다면 분명 지금 내 성경처럼 많이 닮아 너덜 너덜해 졌을 것이다.


 


  1. 번역자들이 뛰어나다

A.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성경과 번역에 대한 자세


“진리가 없이 어떻게 경건이 있겠으며 하나님의 말씀 없이 어떻게 진리(구원하는 진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성경기록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겠는가? 우리는 성경기록을 탐구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요 5:39; 사 8:20). 성경기록을 탐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칭찬을 받고(행 17:11 그리고 8:29-29) 성경기록에 미숙하거나 성경기록을 더디 믿는 사람들은 책망을 받았다(마 22:29, 눅 24:25). 성경기록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다(딤후 3:15). 우리가 무지하다면 성경이 우리를 가르칠 것이고 우리가 그 길에서 벗어나 있다면 성경이 우리는 집으로 인도할 것이며 우리가 흐트러져 있다면 성경이 우리를 바로 잡을 것이다. 근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며 무디어진 우리에게 자극을 주며 냉랭해진 우리에게 불을 당겨주는 것이 성경 기록이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고 빛을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이 일은 껍질을 까서 열매를 먹는 것과 같고 휘장을 젖히고 지성소를 들여다 보는 것과 같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입구의 돌을 굴러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창 29:10)처럼 우물의 뚜껑을 열고 물을 긷는 것이다. 알기 쉬운 말로 번역이 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 없이 (깊은) 야곱의 우물가에 서 있는 아이와 같을 것이고 이사야서의 봉인된 책을 앞에 둔 사람과 같을 것이다.”


 


B.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신앙적 배경


: 영국 국교회 및 청교도


 


C.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학문


“John Bois는 5살 때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이 이 정도의 배경과 능력을 갖추고 있겠는가? 당시 킹 제임스 역자들과 오늘날 학자들간의 차이는 거인국의 거인과 소인국의 소인들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필자를 화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을 조롱하며 이 귀한 책에 온갖 나쁜 수식어 - 구식이다, 한 물 갔다. 부적합하다, 열등하다 - 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그들은 킹제임스 역자들이 자기 시대 학자들보다 못하며 현대 학문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이다. 우리야 말로 그들이 가졌던 학문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 역본 번역자 중 다섯 살 때부터 성경을 읽어온 사람이 있는 지 물어보라! 아마도 5살에는 성경은커녕 읽는 것 자체가 안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질문에 이 단어도 덧붙여 보라 – “히브리어로”. 대답은 고사하고 오히려 묻는 당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 지 모른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그리고 기타 동방 언어에 능통했던 William Bedwell은 지금의 현대 역본 번역자들보다 월등했다. 많은 현대의 “번역자”들은 단어 하나를 만나며 보통 어딘가에 붙어 있는 각주와 또 페이지 하단의 목록을 기웃거리다가 이 히브리어 단어는 뜻은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식으로 번역한다. NASV가 나왔던 1960년 사람들도 NIV가 나왔던 1969년 사람들도 NKJV가 나왔던 1979년 사람들도 이 단어의 뜻을 모르기는 매 한가지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역자들은 이런 동족 언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단어들을 이해했고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대부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런대도 사람들은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신빙성과 우수성과 지식수준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족 언어는 말 그대로 히브리어와 관련된 동일한 계열의 언어를 말한다. 동족언어에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시리아어, 아람어, 콥트어 등이 있다. 그들은 형제 자매처럼 서로 관련되어 있다.”


 


“번역자들의 능력이나 번역이 이루어진 시기를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나는 참으로 이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느낀다. 영어라는 언어가 완성기에 접어든 시기였고 그리스어와 동방 언어 및 랍비 학문에 대한 유례없이 활발한 연구가 영국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 이러한 내용을 읽어본 독자들은 이 같은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현존하는[A.D.1857년 기준] 영국과 미국의 모든 대학을 통틀어 보아도 이만한 수의 이만한 학식을 갖춘 이만한 경건을 가진 신학자들을 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교만한 이 시대에 이러한 거성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킹 제임스 번역자들 만큼 우리에게 확신과 신뢰를 줄 만한 사람들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모든 교단과 기독교 진영 모두를 뒤져 찾아본다고 할지라도 그만한 번역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고의 역량과 자질 갖춘 신학자들이 함께 이루어 낸 작품을 어찌 각지에서 몰려든 어설픈 학자들과 몰락한 목사들과 단순한 신도들의 합작품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작품이 ‘개량되고’ ‘개선되고’ ‘교정을 거친’ ‘믿을만한’ 재번역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며 ‘American and Foreign Bible Unions’라는 것을 만들어 이 건방진 성과물을 출판하고 있다. 이런 천박한 모험가들이 앞서 되짚어 본대로 그런 덕망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 어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신흥 역본주의자들(versionist)이 아무리 우쭐대고 기세 등등 하더라도 그들은 이런 고대 학문의 대가들의 꼬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새파란 친구들이 Andrews 나 Reynolds, Ward, Bois가 원문 성경의 의미에 대해 주석들을 비교하고 있는 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 땜장이들이 손볼 수 있는 쇠붙이가 있고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쇠붙이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땜장이에게 성소의 금 그릇을 맡기겠는가? 그들이 그것을 아무렇게나 땜질하도록 어찌 내버려 두겠는가?… ”


 


3. 번역방법이 뛰어나다


 


A. 팀 단위 번역의 우수성


1) 웨스트민스터, 옥스퍼드, 캠브리지 3개 그룹, 6개조(각 그룹 신구약), 총 57명


2) 모든 번역자들이 직접 번역에 참여


3) 3중 검토(조내부, 조별, 최종 팀)


 


“킹제임스 역자들이 사용한 팀 작업 기술은 현대 역본 번역자들이 사용한 방법과 전혀 달랐다. 각 번역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맡겨진 책(1조의 경우 12권)을 모두 번역해야 했다. 그것도 히브리어로 된 어려운 책들을 말이다. 1조는 창세기에서 열왕기하까지, 옥스퍼드 그룹은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번역했다. 개개의 번역자들은 손수 히브리어를 영어로, 그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번역해야 했다.


NASV, NIV, NKJV를 번역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질이 없었다. 그저 겉포장만 그럴 듯 했을 뿐이다. 물론 현대 역본 번역 위원회에는 학위 있는 사람들과 박식한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해당 역본의 구입을 부추기는 홍보위원에 불과했다. 출판사는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을 필요로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책의 앞이나 뒷장에 추천사를 써놓고 이렇게 광고했다 “아무개 박사도 이 역본을 훌륭한 번역본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슨 역본이든 현대 역본의 번역위원회는 사실상 번역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이 모두 직접 번역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다. 혹 이를 반박할 만한 자료나 문서가 여러분에게 있다면 한 번 보여달라. 필자는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전체 중 실제로 번역을 한 “학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반대로 킹제임스 역자들은 각자가 최고의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었고 자기 번역을 마친 후에도 같이 모여 최종 번역을 결정하는 작업을 했었다.


원 본문은 먼저 7번의 번역작업을 거치고 모여서 1번 더 검토되고 다른 조들로 넘어가 5번 더 손을 거친다. 그들은 번역본을 교환했다. 이것은 팀 단위로 이루어진 노력이었다. 따라서 번역작업은 개인이 7번, 그룹이 1번, 다른 그룹들이 1번씩 5번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그룹에서 2명씩, 여섯 개 그룹에서 차출된 12명이 최종 교정을 보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각 책은 최소한 14번 이상의 철저한 번역을 거쳤다. 우리가 아는 한 이는 정말 이례적인 것이며 전무후무한 팀 단위 작업 방법이다. 그 우수성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제임스 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임스 왕(제임스 왕의 이름을 따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불림)의 흠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물고 늘어지길 좋아한다. 제임스 왕은 여러 모로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번역 자체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번역의 필요를 인정하고 번역 자체만을 지시했을 뿐이었다.”


 


B. 번역 기법의 우수성


1) 킹 제임스 번역자들은 문자적 일치 곧 형식적 번역 기법을 채택했다.


 


2) 킹 제임스 번역자들은 동적 일치 번역(의역) 방식을 거부하였다.


 


“킹제임스 역자들은 채택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기법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문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는 동사가 있고 형용사, 전치사, 분사 등도 있다. 히브리어 문장을 그 구조와 형태를 유지한 채로 영어로 옮길 수 있으면 킹 제임스 역자들은 그렇게 했다. 가령 동사가 있으면 그것을 명사나 다른 품사로 바꾸지 않고 동사로 옮겼다. 영어에는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이란 분야가 있는데 이 문법에서는 하나 형태에서 다른 하나로 바뀔 때 모든 것이 바뀐다. 바로 여기에는 소위 동적 일치라는 것이 나왔다.. 동적 일치는 영어(혹은 다른 언어)로 넘어올 때 본래의 단어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방법이 우수한 것은 이런 동적 일치 기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문자적(혹은 형식적)일치 기법이기 때문이다.”


 


3) 동적 일치 번역 방식의 정체


- 마귀의 삭제, 변경, 첨가의 법칙(창 3:1~5)


“번역 일을 한 지[그녀는 방글라데시에 있으며 벵골성경을 번역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우리는 상당한 좌절감을 맛보았다. 성경이 여러 부분을 조정하면서도[그녀가 말하고 있는 이 “조정들(adjustments)”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고 바꾸는 일들 말한다.] 마음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너무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로 인해 양심이 움직인 것이다.]. 내 동료는 특별히 계시록 22:18,19의 경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동적 일치대로 한다면 어떤 본문을 쓰든 마찬가지이다.


“그럼 동적일치와 본문의 관계를 알아보자. 앞서 밝혔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정확하고 알맞은 구약 히브리어 본문과 신약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한다. 가장 좋은 본문은 원 본문의 단어나 형식이 고스란히 영어로 옮겨질 때 그 의미를 갖는다. 즉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의 형태로 번역될 때 좋은 본문이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시 동적 일치 기법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동적일치에서는 본문에 있는 단어나 본문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원할 때 바꿀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입맛에 맞게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 여기서 본문의 종류가 무슨 의미를 갖겠으며 그것이 정확하든 그렇지 않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번역자가 누구면 어떻겠으며 그 자질을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바꾸는데 무슨 학위나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사탄이 그렇게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동적일치기법으로 번역하는데 누가 올바른 본문에 신경쓰겠으며 올바른 번역자를 구하겠는가? 그저 마음대로 바꾸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역본의 현실이다. 슬픈 현실이다. 그들은 마소라 본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리아 역본이나 70인역, 라틴 벌게이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정과 추측만 있으면 된다. 본문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맛에 맞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자 보시다시피 동적 일치 문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본문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우리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적일치기법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 번역과 의역의 차이


“번역은 [1] 최대한 많은 원문의 내용이 [2] 가능한 한 적은 단어로 [3] 하지만 원문의 분위기와 강조점을 유지한 채 표현되어야 한다. [4]번역자는 힘써 가장 근접한 단어와 [6] 개념과 [6] 억양을 찾아내야 하며 양심에 따라 본문에 필요하지 않은 [7] 단어나 [8]사상을 더해서는 안 된다[동적일치를 사용하는 자들은 이렇게 한다. 그들은 본문과 상관없는 단어나 사상을 추가시킨다.]. [8]번역자는 뜻을 넓히거나 [9] 설명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10]옮김으로 [11]원문의 영과 힘을 보존해야 한다. [12]필요하면 현대 구어체를 포기하고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며 이로써 [13] 명확한 번역이 나올 수 있다…. 물론 [14]기존의 바른 번역 성경에 있는 단어나 구절들을 좀더 손봐서 얻는 이로움도 있다. 하지만 [15]그런 작업은 주석이지 [16]번역이 아니다. [17]번역은 하나님 말씀의 원문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18]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이지 [19]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박사들의 해석이나 견해가 아니다. [20] 이 둘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땅을 침범하는 자가 된다.”


 


- 성경이 동적일치 방식을 금한다: 더하기(신 4:2; 신 12:32; 잠 30:6; 계 22:18), 빼기(신 4:2; 신 12:32; 렘 26:2), 바꾸기(신 5:32-33; 신 17:18~20; 신 28:13-14; 수 1:7-8; 왕하 22:2)


 


- 성경은 “사상이나 관념, 신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들(words, 단어들)”의 중요시 한다


사 55:10; 렘 15:16; 렘 23:36; 암 8:11-12; 욥 19:23-24; 시 12:6-7; 시 119:89; 신 8:3; 마 4:4; 막 10:38; 눅 9:26; 마 24:35; 갈 3:16


 


4. 교리가 뛰어나다


 


“현대번역본들을 쓴다고 해도 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1. 현대 번역본들에 대한 잘못된 말들

“의미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400군데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실제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구절은 50개이다. 그렇다고 이 50개로 인해 우리의 믿는 바가 바뀌거나 의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외에 많은 명확한 구절들이 있고 또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필립 샤프, ‘그리스어 신약과 영어 역본 입문’ 중에서)


 


“주목할 만은 것은 이 모든 표준 번역들이 매우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 여겨 볼 것은 여러 의심스러운 번역들이 논란이 되고 있고 까다로운 구절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 어떤 것[논란이 되고 있는 번역내용]도 하나님 말씀의 핵심적인 교리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피어슨 박사, ‘성경 번역들’ 중에서)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킹 제임스 성경을 고수하고 있고 성경 연구에 필요한 주석의 하나로 개역본[the REVISED, 즉, 1881년의 영어 개역본(RV) 또는 1901년의 ASV를 가리킨다]을 사용한다. 덧붙여 최근 역본이라도 근본적인 교리가 바뀐 것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일러두고 싶다.”(탤보트 박사, ‘성경 번역들’ 중에서)


 


“번역본들간의 차이는 극히 미미하며 사소한 것들이다. 결국 우리는 오늘날 번역본들에서 교리 하나, 사건 하나, 명령 하나, 권면 하나 빠진 것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존.R.라이스 박사, ‘성경 번역들’ 중에서)


 


  1. 교리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몇 가지 실례

  • 신론(요일 5:7,8)

  • 교회론(계 2:15) 개역: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which thing I hate’가 없음

  • 사탄론(눅 4:8) ‘get thee behind me, Satan’이 없음

  • 성경론

막 16:9-20절 전체 괄호, 요 7:53~8:11전체 괄호, 막 13:14(개역: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이 빠져 있음/ 다니엘이 저자이며 대언자임), 벧후 3:2(개역: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우리’가 ‘너희’ 혹은 ‘그들’되 되어있음/ 베드로의 저자됨, 사도됨 의심), 눅 4:4(‘하나님의 모든 말씀’ 빠져있음), 요 17:17(그냥 ‘진리’와 ‘Thy truth’), 마 27:34(개역: 쓸개 탄 포도주, ‘식초’가 ‘포도주’로 둔갑, 시 69:21 예언의 정확한 성취를 흐림), 마 27:35(개역: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나머지 부분이 없음, 시 22:18의 성취 가림)


  • 종말론

마 25:13(‘사람의 아들이 오는’ 삭제), 골 3:6(‘불순종의 자녀들’이 빠짐. 심판의 대상이 누구?), 롬 14:10(‘그리스도’의 심판석, vs ‘하나님의 심판석’), 막 3:29(영원한 ‘형벌’ vs 영원한 ‘죄’), 벧후 2:17(‘영원히’가 빠짐, 지옥의 영워넝 가림), 히 10:34(‘하늘에’가 빠짐), 계 16:17(‘하늘의’가 빠짐, 성전의 위치)


  • 구원론

계 21:24(개역: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구원받은 자들의’가 빠짐, 구원받은 사람들에 국한하지 않음), 딤전 6:19(개역: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vs ‘영생을 붙듬’), 롬 5:1(개역: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골 1:14(‘그분의 피를 통하여’가 빠짐)


  • 그리스도론

고전 11:24(‘부서진’이 빠짐), 고전 11:29(‘합당치 않게’가 빠짐), 딤전 3:16(‘하나님’ vs ‘그’), 요일 4:3(‘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이 빠짐), 요 1:18(‘God’이냐 ‘Son’이냐?), 계 1:11(‘알파, 오메가, 처음, 나중’이 없음)


 



 

IV. 바른 성경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왜 그렇게 중요한가?)


 


• 안으로


  • 줄거리가 아닌 정녕 성경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갖게 된다.

  •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신실함 분임을 인정하게 된다.

  •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케 된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된다.(성경은 단순한 복음 전도지가 아니다).

“또 어린아이 때부터 네가 성경 기록들을 알았기 때문이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 3:14~16)


  • 순수한 말씀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된다(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이로써 건전한 교리, 건전한 생각이 나온다. 말씀이 온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누가 아기에게 중금속, 유전자 조작으로 가득한 음식을 먹이겠는가?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이 젖으로 자라가도록 하라”(벧전 2:2)


 


• 밖으로


  • 성경을 두고 벌어지는 영적 전쟁의 실체를 인식하고 깨어 대비하게 된다.

  • 오늘날 성경은 사탄의 가장 효과적인 공격 대상이다.

  • 오늘날 각종 이단과 뉴에이지 운동의 배후에는 성경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성경으로 그들의 교리를 주장한다. 현대 역본은 건전한 교리를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훌륭한 피난처(빌미 제공)가 된다. 바른 말씀만이 이를 물리칠 수 있다.

  • 줄거리에 기초한 신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공격 앞에 무너질 수 있다(엡 4:14).

 


  • 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믿는 이유에 대해 묻는 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

 


• 성경 보존에 대한 우리의 믿음


  •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X)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O)

  • 우리는 현 시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킹제임스 안에 보존되었음을 믿는다(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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